하와는 순결하였지만 인간 본능으로 인하여 뱀의 교묘한 거짓말에 흔들린다. 하와는 뱀이 누구건 간에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뱀에게 저항하기는커녕 뱀의 꾐에 굴복한다. 하와는 즉시 순결성을 잃게 된다. 그 다음 하와는 결정적인 세 단계를 밟는다. 우리는 항상 이 단계에 따라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1) 하와는 더럽혀진 망상에 굴복했다.
하와의 마음은 금단의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에 매혹되었다. 곧 이 금단의 열매는 하와의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되었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는 "사탄의 약속은 하와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몰아내었다. 이제 하와가 그 금단의 나무를 보는 눈은 전과 다르다 (창 3:6). 하와는 금단의 열매가 참으로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세 번이나 말했다"고 적고 있다. 칼빈은 하와가 뱀의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믿음이 타락한 것이라고 본다.
하와에게 '금단의 나무는 먹음직하게' 보였다 (창 3:6a). 먹는 것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먹는 것을 금하신 금단의 나무였던 것이다.
하와는 감정적 즐거움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 금단의 나무가 '보암직도' 했던 것이다(창 3:6b). 그리고 또한 하와는 창조될 때 이미 육체적으로 성숙하였을 것이며 예수님처럼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의 구절처럼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기 전에 이루어진 모든 창조는 알려지고 밝혀졌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아담과 하와의 지혜가 자라도록 하셨다. 그렇다면 왜 단 한 그루의 금단의 나무와 그 열매에서 나오는 금단의 '지혜' 를 갈망하게 됐을까? 그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2) 하와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았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창 3:6d)
하와는 자기 자신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다. 하와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여 왔던 모든 것에 등을 돌렸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기로 했다. 하와는 금단의 열매를 먹었으나 그 즉시 눈에 뛸 만한 나쁜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죄라는 것이 다 그런 식이 아닌가? 처음에는 매우 즐겁고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품게 하는 죄는 진실한 것처럼 보인다. 죄가 일시적인 쾌락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전한다 (히 11:25). 죄라는 것이 쾌락을 주지 않는다면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겠는가?
3) 하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담을 죄로 끌어들였다.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e).
이것은 사회적인 차원의 죄다. 죄는 죄를 범하는 사람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죄를 범한 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친다. 죄는 동반자를 원한다. 다른 많은 사람 중에서 특별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죄의 씨앗을 뿌린다. 이것이 죄의 방법이다!
아담이 하와의 죄에 가담한 것에 대한 많은 저서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담은 뱀이 유혹하는 장면에서 시종일관 벙어리처럼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하고 듣기만할 뿐 혼란에 빠진 자기 아내 하와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아담은 아내의 설득에 저항할 수도 없었다고 확신한다. 또 다른 사람은, 아담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과 아내의 유혹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한다.
디모데전서 2:14는 이런 견해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바울은 "아담이 꾐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꾐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말했다. 도널드 거스리 (Donald Guthrie)는 이 말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것 같다. "하와는 꾐에 빠져 속았으나 아담은 두 눈을 뜬 채 죄를 범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무엇인가?" 칼빈은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하는데, 이 답 중에는 "자만심은 모든 죄의 시작이며, 이 자만으로 인해서 인류가 타락했다" 는 어거스틴의 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사탄의 똑같은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모든 선한 것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헐벗음과 가난을 깨닫게 하며 아담 안에서 잃었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만심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면 예수께서 갖고 계신 것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채우실 것이다.
아담에게서 비롯된 인간의 타락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맨 처음 결과는 남자와 여자의 영적인 죽음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분리되고 말았다. 그들은 생명 나무로 접근하는 길을 차단당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 3:23).
아담의 타락이 빚은 가장 큰 결과는 전인류의 타락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서는 이와 같은 끔찍한 결과에 대하여 다른 어떤 책보다도 강조하고 있다. 에베소서 2:1--5에서 사도 바울은 매우 간절하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얻기 전 모든 인간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세상 풍속을 좇아' 살고 있다. 그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의 권세에 따라서,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의 권세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 육체의 욕망'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육체의 욕망과 마음의 욕정에 탐닉하며' 살고 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다. 이것은 '다른 이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하는 조건이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이 어두운 것이다! 아무도 이 설명을 피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인류를 이 기준에 포함시키고 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들이다 (마 13:37--39 : 요 8:44: 요일 3:3--10 상).
2) 그들은 사탄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 (골 1: 12--14).
3) 그들은 사탄의 굴레에 씌워 있다 (행 26: 18).
4) 사탄이 그들을 눈멀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 안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후 4:3--4: 눈이 멀게 되는 인간적인 이유들은 고후 3:14--15을 참조)
5) 그들은 모두 악한 자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 요일 5:19). "악한 자의 손아귀에 붙잡혀 그의 지배를 받고 있다 ⋯ 사탄의 팔 아래에서 자고 있다"고 존 스토트 (John R. W. stott)는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6) 그들은 모두 사탄의 소유이다 ( 마 12:22--29).
7) 그들은 모두 사탄이 조종하는 세계 체제 속에서 노예화되어 있다 (요 12:31; 14:30; 16:11; 요일 5:19)
8) 그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굴복한 상태에 있다. "그들의 삶은 악한 초자연적인 힘의 지배를 받는다" 고 한 주석가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엡 2:2).
우리들은 성경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배워야만 한다 (고후 2:11). 우리들은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를 향한 사탄의 간계에 무지해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기도와, 선포된 말씀, 그리고 굽히지 않는 신앙을 통해 인간 개인의 삶과 사회와 세계의 각 지역들을 다스리는 정사와 권세들과 싸울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엡 3:10; 6:12--18' 계 12:11).
귀신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악한 초자연적 세력들이 이미 패배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사탄과 귀신들은 주님의 구원 행위로 하늘의 권세 있는 자리를 이미 빼앗겼다.
요즘 저의 변화는 성령께서 제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죄된 부분도 깨닫게 하시고 마귀를 대적하게도 하시고 기억도 잘 안나는 오래된 상처도 생각나게 하셔서 무의식중에 애써 부인하다가 오늘은 직면해 보았습니다. 제 안에 분노도 있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발견했습니다. 다시 그 때의 그 감정으로 돌아가 용서를 선포하며 회개도 했습니다. 참 힘들고 감정이 잘 추스러지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주님이 보였고 감사했습니다. 가끔씩 이런 적이 있는데 치유가 되고 나면 다시 그 당시를 떠올려도 아프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참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도 경험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하나님 보다 더 중요게 여기는 먹음직하게 보이는 금단의 열매가 나에겐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글이네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뜻이 아닌 나의 생각 지혜를 믿고 행하는 교만함이 나에게 있는가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도 영적전쟁에서 이깁시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