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에서 얻은 영적 전쟁에 관한 교훈들
먼저 사탄과 나누는 상호 대화의 위험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여기서 말하는 대화는 말로 하든 마음 안에서 하든 마귀가 원하는대로 나누는 대화 말이다. 사탄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 라 하시더냐?" 하와는 사탄을 침묵하게 하는 대신 그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그러자 사탄은 하와의 대답에 교묘하게 반응하며 덪을 놓았다. (창 3:1--6).
마귀가 원하는 방법대로 대화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마귀가 주는 모든 의심과 거짓과 자만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은 마태복음 4:10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라는 예수님의 말씀뿐이다.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씀은 에베소서 6:17에 있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rhema)" 과 같은 뜻이다. 귀신들은 일단 정체가 드러나면 완전히 침묵을 지키다가 돌연 말이 많아진다. 그때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반드시 귀신들의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
악령의 입을 다물게 할 때 일인칭 '나'를 사용하면 안되고 대신 주님께 부탁하여 악령을 잠잠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 어디에도 주님께 부탁하여 악령을 잠잠하게 하는 절차를 가르쳐 주거나 그 절차를 따른 예가 없다. 앞서 말한 주장이 매우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마귀의 세계를 누를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을 또다시 요구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주어지는 이 같은 권세는 주님의 열두 제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며 (눅 9:4) 다른 70인 제자들에게도 주셨다 (눅 10:1 이하). 70인 제자들도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사도단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 그리스도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70인 제자들은 전도하고 돌아와서 자신들이 마귀를 누르는 권세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70인 제자들은 기뻐하며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7) 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도와 전도 이외의 중요한 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주의를 주셨을 뿐이다. 귀신들의 항복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눅 10: 17--18).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더 중요했다
(눅 10:20). 성경 가운데 복음서 이외에 축사를 기록한 곳은 사도행전 16장 뿐이다. 사도 바울은 70인 제자가 실시했던 축사 사역을 그대로 따라했다. 누가는 바울이 귀신들린 빌립보의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여자에게서 썩 나가라"고 외치자 "마귀가 곧 떠났다"고 쓰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것
창세기 3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사탄이 자기 방법으로 하와를 꼬여서 자신과 대화하도록 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탄은 교묘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공격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렇게 하시더나?" 랑게(John Peter Lange) 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사탄이 애매모호하게 하와를 미혹시킨 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라는 사탄의 질문은 의심쩍은 놀라움을 나타낸다. 이런 사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경우에 따라서 "예"도 되고 "아니오"도 될 수 있다. 이것은 유혹이 시작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이다. 사탄은 매우 조심스럽게 의심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그 다음 사탄은 불신을 일깨우고 동시에 자제력을 약화시킨다.
사탄이 하와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맛있는 열매를 전부 다 먹으라고 하지 않으셨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선하시냐" 하나님께서 정말 선한 분이시라면 어떻게 너에게 그럴 수 있니?"
우리도 마음속에서 그런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고통당하는 너를 그냥두시는 하나님이 정말 선한 하나님일까?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일까?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라면 어떻게 네가 사랑하는 자식이나 아내나 남편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암에 걸려 죽게 하실까? 어떻게 하나님을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품었던 여러 가지 의심들을 여기에 덧붙일 수 있다.
하와는 계속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와가 처음부터 이 의심을 중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와는 이런 의심의 상념들이 더 이상 진행하지 않도록 중지할 수 있었고 또 중지해야 했지만 중지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들이 마귀의 공격을 받을 때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사탄은 자신의 사자인 귀신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사탄은 우리 믿음을 공격한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고 지적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훼손한다. 우리들은 마음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탄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사탄을 무찌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때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rhema : 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상의 특별한 구절이나 사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와는 하나님께 변호하려고 한다. 하와의 말을 쉽게 풀어 쓰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아니 너는 잘못 알고 있어. 우리들은 동산에 있는 열매를 다 먹을 수 있어. 다만 동산 가운데 있는 아무 열매는 빼고 말야." 사탄에게 대답을 하는 동안 하와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스쳐 갔을지 모른다. '왜 하나님은 금지된 저 나무를 심으셨을까? 왜 하필이며 동산 한가운데 저 금지된 나무를 심어서 우리가 매일 보지 않으면 안되게 하셨을까?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하와는 사탄의 덫에 그대로 걸려들었다. 자신과 이야기 나눈 자가 사탄이었음을 하와가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와의 행동은 여전히 변명할 여지가 없다. 하와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또 하와는 하나님께서 순종을 원하신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와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할거야. 왜 하나님이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든 나는 하나님을 믿을 거야. 나는 하나님께 순종할거야! 결코 하나님을 의심할 수는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
불행하게도 하와는 잘못된 생각을 따랐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하와의 믿음이 약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 마귀는 다음 단계를 취하였다. 마귀는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였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4). 칼빈은 다음과 같이 주석했다.
이제 사탄은 더욱 과감하게 공세를 취하고 있다. 사탄은 자기 앞에 틈이 생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 벌어진 틈을 통해서 직접 공격을 감행한다. 우리들이 완전히 무장을 해제한 몸을 스스로 노출할 때 비로소 사탄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벌인다.
사탄은 곧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거짓이라고 공공연하게 공격한다. 사탄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으로 경고하고 계신데, 우리들은 태평하게 졸며 하나님을 우롱하기조차 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생활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일단 마귀의 꾐을 당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여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마련이다.
우리 마음 안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우리 마음이 공격받을 때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0:3--5에서 확실한 답변을 하고 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여기서 '육체' 는 아마도 우리의 인간적인 속성을 말할 것이다) 싸우고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고후 10"3). 어느 전쟁이든지 반드시 무기가 필요하다. 영적 전쟁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적과 효과적으로 잘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주셨다.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인간적인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들 중 제아무리 총명하고 강한 자라 할지라도 적을 이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무기는 거룩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무기를 주셨기 때문에 그 무기는 우리의 대적이 가진 그 어떤 무기보다도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무기는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의 모든 요새를 파괴하는데 충분하다"고 바울은 주장한다 (고후 10:4).
그렇다면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바울은 5절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주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하와와 똑같은 상황에 있다. 마음(heart)과 감정(emotion)과 의지(will)가 포함된 우리 마음 (mind)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삶 가운데 있는 두 왕국의 싸움터이다. 이것이 일상 체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약 성경 전체의 증언이다. 만약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에서 이긴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미라클님이 올려주신 영적전쟁 핸드북 책요약은 필요할 때마다 찾아서 읽게 될거같아요 감사합니닷🤩
미라클님🥰💚💙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