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참관 후기>
유대인 교육 전문가 현용수 교수(쉐마교육연구원 원장, 전 서울교대 초빙교수)
2024년 10월 27일 ‘동성혼법과 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현장 참여 100만명 + 인터넷 참여 100만명)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다. 세계 기독교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예배가 될 것이다. 시종일관 모든 순서가 진지하고 은혜가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님의 임재가 느껴졌다. 주최 측에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도 몇 가지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보다.
첫째, 이렇게 교회가 합심하면 정부에게도 그리고 잘못된 정치인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왜 그동안 못했는가? 교회 지도자들부터 연합하는데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일부는 좌파정부에 잘못보일까 걱정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세상 권력을 너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둘째, 또한 그동안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모일 수 있었는데도 왜 정치인들에게 교회의 파워가 미약했는가? 기독교인 개개인이 너무나 순진했기 때문이다. 숫자는 많은데도 좌파가 덤비면 대부분 무서워 침묵했기 때문이다. 싸울 줄 모르는, 숫자만 많은 참새 떼와 같았다.
왜 이스라엘은 인구수가 700만 명인데 13억의 이슬람권을 이기는가? 그들은 악과 맞서 싸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구약의 하나님 백성이고, 기독교인은 신약의 하나님 백성이다.
그런데 왜 한 하나님의 백성인데 유대인은 악과 맞서 싸울 의지도 강하고 싸우는 전술도 아는데 기독교인은 싸울 의지도 약하고 싸우는 전술도 모르는가? 유대인은 성경적 쉐마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인은 복음만 알고 쉐마교육을 몰랐기 때문이다.
<전자는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하기 위해 구약의 지상명령(창 18:19; 신 6:4-9), 즉 가정을 통한 수직선교에 집중했고, 후자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신약의 지상명령(마 28:19-20), 즉 교회를 통한 수평선교에 집중했다. 신약의 성도는 두 가지를 모두 균형 있게 지켜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인성교육의 문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인성교육과 유대인의 독수리 인성교육은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 인성교육이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착한 인성만 강조하는데, 유대인의 인성교육은 착하지만 강하고 큰 그릇을 만들어내는 ‘독수리 인성’을 강조한다.
그 모델이 성경의 모세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성경교육 대신에 사탄문화가 강한 애굽 바로의 궁중대학에서 40년 동안 교육시키시고, 이어서 미디안 광야대학에서 40년을 교육시키셨는가? 그를 독수리 같은 큰 지도자로 키우기 위함이었다(신 32:11). 유대인의 ‘독수리 인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생각해보라. 한국의 1000만 기독교인이 유대인처럼 모두 참새가 아닌 독수리가 된다면 무엇이 무섭겠는가! 왜 좌파 정권은 과거 불교 스님 300명이, 그리고 천주교 신부나 수녀들 몇 백명이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면 겁을 먹고 정당 대표가 사과를 하는데, 200만 기독교인이 시위를 하는데도 비웃기만 하는가?
왜 좌파정권과 언론은 기독교를 만만하게 보는가? 기독교인은 좌파보다 담합하기도 어렵고 형제들을 악으로부터 지키려는 의리도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는 앞에 나서는 사람만 손해를 경우가 많다.
왜 이웃전도나 세계선교에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데는 그렇게 이기적인가? 분명 잘못된 우선순위다.
이제 이런 잘못된 개념을 고치기 위하여 기독교도 유대인의 쉐마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정의를 바로 세워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셋째, 이번 집회의 시종일관 주제는 ‘건강한 가정’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동성혼법과 차별금지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법이 통과되면 한국 교회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예로 유럽과 미국 교회의 예를 들었다. 그 지역의 가정이 붕괴된 이유는 이런 악법들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50년을 산 저자가 확인한 바로는 그곳의 교회와 기독교인 가정들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정통파 유대인 가정들은 아직도 모세의 때처럼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면에서 세대차이가 없다.
유대인은 어떻게 신약시대에 2000년 동안 전 세계를 유랑하면서도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세속 문화에 물들지 않고 자녀들을 거룩하게 교육시키는데 성공했는가? 왜 기독교인은 세상의 영향을 받는데, 유대인은 영향을 받지 않는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은 쉐마교육을 자녀들에게 계속 시켜왔고, 기독교인은 모르고 안 시켰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인은 교회가 교육의 주체이지만 유대인은 가정이 교육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도 교회학교가 성도들의 자녀교육을 책임지는 시스템에서 성도들이 자기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유대인 회당처럼 주중에 부분적으로 성도들의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가정을 세우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유대인의 성경적인 쉐마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가정이 교육의 주체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아니다. 거룩한 교육을 시키는 비법, 즉 교육의 콘텐츠를 알아야 한다. 유대인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정교육을 시키고 성교육을 시키는가? 유대인의 성경적인 쉐마교육에 답이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41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제 K-쉐마로 건강한 가정, 거룩한 대한민국을 만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