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지난 8월 1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서부 파라주의 주도인 파라시에 진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년 전 미국에서 9·11테러가 벌어지고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일어났다. 사실 미국의 일방적인 폭격에 탈레반 정부는 제대로 대항도 못 했다. 미국의 막강한 화력 앞에 탈레반 군사력은 형편없이 무너졌고, 그들은 정부를 버리고 퇴각했다. 2001년 당시 수도 카불은 새로운 세상이 온 것 같은 활기가 있었다. 탈레반 정부 시절 여성의 외출과 등교 금지, 음악과 TV 시청 금지 등 각종 제한이 모두 풀렸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탈레반 정부 인사를 만나 인터뷰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인적 사항이나 사진이 없었다. 알고 보니 탈레반은 사진 촬영을 죄악시하고 물라(성직자) 누구누구 하는 식으로 본명인지 아닌지 모르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흔적도 없이 수도 카불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탈레반이 화려하게 카불로 돌아왔다. 20년 만에 나타난 그들은 카불 전역의 도로를 점령하고 대통령궁에 들어가 대통령 집무 책상 위에 앉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너무 빠른 복귀에 미군도, 서구 언론도 우왕좌왕했다. 카불공항은 피란 가려는 인파로 넘쳐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는 나라들은 모두 국경을 막았다. 탈레반 병사들도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철통처럼 막았다. 모든 길에는 탈레반의 검문소가 생겨났다. 아프가니스탄은 길이 외길인 경우가 많다. 그 길목을 다 탈레반이 지키니 아프간 사람들의 선택은 공항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편수는 한계가 있다. 공항에 넘치는 인파 중에 비행기로 피란을 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아프간 정부는 도둑들”
우리가 궁금한 것은 탈레반이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등장할 수 있었는가이다. 탈레반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조짐은 진작부터 있었다. 2001년 공중 분해됐던 탈레반은 각자의 고향으로 가거나 파키스탄 탈레반 지역으로 옮겨 철저하게 은둔 생활을 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미군의 드론 공격과 오폭 등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생겨나자 아프간 전역에서 서서히 반미 감정이 커졌다. 이 반미 감정을 양분 삼아 탈레반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탈레반은 미군과 연합군을 수시로 공격했다. 그때까지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을 부르는 이름은 ‘아프간 급진무장단체’였고, 두 정부가 섬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문제는 미군의 막강한 군사적 화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세가 너무도 빠르게 확장돼 나갔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전쟁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하는 절실함으로 탈레반에 대해 군사적 해결 방법이 아닌 정치적 해결 방법을 택했다. 2010년부터 물밑에서 탈레반과 미국의 직접 협상이 추진됐다.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 미국이 직접 만나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협상이 순조롭지 못했다. 탈레반 측 대표라고 나타난 사람에게 미국이 기껏 공들여 협상했는데 알고 보니 가짜였다. 중간에 탈레반 인사를 소개한다며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 측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탈레반 온건파와 협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미국은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을 만났을까’이다. 당시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는 정말 심했다. 아프간 초대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의 형제들은 부패의 상징일 만큼 아프간 정부 인사들의 부정부패가 대단했다. 전 세계가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마음으로 보낸 국가 재건 원조금은 대부분 아프간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아프간 국민의 분노가 커지며 “아프간 정부는 도둑들”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미국으로서는 민심이 떠난 아프간 정부를 이 협상에 끼워넣기가 난처했다. 탈레반도 부패한 아프간 카르자이 정부를 협상에서 배제하는 것을 첫 번째 협상 조건으로 내세웠다. 미국과 탈레반의 단독 협상이 아니면 탈레반은 절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탈레반은 아프간 영토가 아닌 제3국에서 미국과 직접 협상을 원했다. 그 결과 미국과 탈레반은 아프간 영토가 아닌 프랑스, 노르웨이 등지에서 수개월간 비밀협상을 이어갔다.
아프간 정부 빠진 평화협상
그때 탈레반과 미국 사이에서 협상을 도와주겠다고 나타난 나라가 카타르다. 카타르가 협상 장소를 제공하며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을 주선했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6월 18일, 미국과 탈레반은 카타르 도하에 ‘탈레반 정치사무소’를 개설했다. 탈레반은 정치사무소의 명패를 ‘이슬라믹 에미리트 오브 아프가니스탄(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으로 걸었다. 이는 과거 탈레반 정부가 아프간전쟁 직전까지 사용하던 국호다. 하얀 탈레반 정부 국기까지 게양하니 마치 정식 대사관처럼 보였다. 그리고 정치사무소를 개설한 지 이틀 후인 6월 20일 드디어 미국과 탈레반은 정식 평화협상을 열었다. 3년간 미국이 공들여 탈레반을 테이블 앞에 앉힌 것이다.
미국은 이 협상에서 먼저 ‘알카에다와의 관계 단절’을 탈레반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탈레반 측은 거절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아프가니스탄 폭력 사태 종식’이나 ‘여성·소수자 인권보호’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수감된 탈레반 인사 석방과 미국의 완전 철군 등을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지난해 2월 29일, 탈레반과 미국은 평화협상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때로는 UAE로 협상 테이블을 옮기는 등 10차에 걸친 피 말리는 공식 협상이 마침내 빛을 본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시도한 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는 아프간전쟁에서 완전히 손 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로 천문학적 숫자의 원조금을 들이부었건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을 궁지로 몰았다
이 평화협상에는 아프간 정부가 배제됐다. 처음엔 아프간 정부도 반발하며 미국에 항의하며 각종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대세가 이미 탈레반에 기울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다급해진 아프간 정부도 탈레반과 평화협상 테이블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아프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평화협상 타결을 위한 조건으로 내세웠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 7월 “카불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아프간에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포위한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미군의 치누크 수송헬기가 카불에 남아 있는 미국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대사관 건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카불 | AP 연합뉴스
안갯속에 빠진 아프간 정세
지난 8월 15일, 카불은 탈레반에 순식간에 함락됐다.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 조건이던 가니 대통령의 사퇴도 간단히 해결됐다. 가니 대통령은 카불 함락 직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을 모두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프간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톨로 TV의 기자인 아하마드 쉬르는 “탈레반도 이렇게 쉽게 카불을 함락할지 몰랐을 것이다. 아프간 정부는 진짜 정부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 무정부 상태로 산 국민”이라며 분개했다. 탈레반은 이제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새로운 주자가 됐다. 8월 31일이라는 철군 시한을 넘기면 이들은 내각을 준비하고 새로운 법정을 개설할 것이다. 탈레반은 철저하게 샤리아법(이슬람 원리주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기존의 세속적인 법정을 모두 철회하고 샤리아 법정을 세움으로써 이슬람 원리주의를 아프간 전역에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서구 사회는 아프간이 다시 20년 전으로 회귀할까 염려한다. 탈레반 지도부는 여성인권도 보장하고 폭력 없는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할 것이라는 성명을 연달아내고 있다.
아프간 정세는 안갯속이다. 탈레반에 맞서는 북부동맹의 전사들이 아프간 북구를 중심으로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ISIS(이슬람국가) 전사들도 4000여명이 아프간에 남아 있다. 이들은 탈레반과 적대적 관계이다. 즉 미국이 20년간 아프간에 쏟아부은 그 많은 최첨단 무기는 탈레반뿐 아니라 다른 무장 전사 손에 들어갔다. 이 무기들이 고갈될 때까지 서로 전투를 이어갈 수도 있다. 마치 1990년 소련이 아프간을 완전히 철군한 뒤 소련군이 버려두고 간 무기로 각종 무장단체가 난립해 최악의 내전을 만들었던 것처럼. 카불대학교의 정치학과 나사르 샤리프 교수는 “서구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을 아직 잘 모른다. 그들(미국과 서구사회)이 내세운 아프간의 계획은 그저 페이퍼상의 계획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아프간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기사출처]:아프간,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 경향신문 (khan.co.kr)
아프간 사태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ㅠ ㅠ